冊-근대건축은 왜 실패하였는가
초고층 건물의 환상
.
.
.
.
그렇게 하여, 인간의 조건과의 정열적인 관련에서 싹튼 근대건축운동은 초고층건물을 통하여 부동산투기자의 으뜸가는 변호자가 되고 말았다. 콘스탄티노스 독시아데스를 알고 있던 ‘워싱턴 포스트’지의 평론가 월프 본 엑카르트는 건축가이자 도시계획가였던 독시데스가 1971년의 한 회의에서 “나의 가장 큰 죄는 고층건물을 지은 일이다”라고 말했다고 최근에 인용하였다.
그리고 독시아데스는 그가 이전에 고백하였던 “죄”를 이렇게 들어 말하였다.
“ 첫째, 과거의 가장 성공적인 도시는 인간과 건물이 자연과 더불어 어떤 균형을 이루는 곳이었다. 그러나 고층건물은 자연을, 또는 현대적인 말로 환경을 거역하고 있다. 그것은 경관의 규모를 파괴하고 정상적인 공기의 순환을 방해한다. 그리하여 자동차와 공업의 폐기물질을 모아 쉽게 분산시킬 수 없는 심각한 공해의 골짜기가 되게 한다. ”
“ 둘째, 고층건물은 인간 자신을 거역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을 타인에게서 고립시키고, 이 고립은 상승하는 범죄율의 중요한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자연과 그리고 다른 어린이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잃게 됨으로서 더욱 더 괴로움을 받고 있다. 접촉이 유지 될 때에도 그들은 부모의 관리에 따른다. 그 결과로 어린이나 부모나 모두 괴로움을 받는다. ”
“ 셋째, 고층건물은 사회를 거역한다. 왜냐하면 사회의 중요한 구성단위 –즉 가족, 근린 등-가 예전대로 자연스럽게 그리고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것을 막기 때문이다. ”
“ 넷째, 고층건물은 교통, 통신, 전력, 급배수 등의 조직망을 거역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고밀도, 과하중의 도로, (더 광역화된) 급수시설을 초래하기 때문이며, 더욱 중요한 것은 새로운 문제-범죄는 그 하나에 불과하다-를 야기하는 수직의 조직망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
“ 다섯째, 고층건물은 과거에 존재했던 모든 가치를 배제함으로써 도시의 경관을 파괴한다. 한 때 도시위에 솟았던 모든 교회, 모스크, 사원, 그리고 시청사와 같은 인간적인 상징은 지금은 초고층 건물의 밑에 있게 되었다. 우리는 신이나 정부가 인간 위에 군림해야 한다고 동의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자산매각소득의 상징이 다른 모든 것 위에 군림해야 한다고 쉽게 동의할 수 있겠는가 ? ”
독시아데스는 근대건축운동에서 나타난 가장 심오한 사상가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더 민감한 사상가의 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가 제기한 문제는 하찮은 것이 아니다. 시카고의 건축가 해리 위이즈는 “ 우리는 건축을 경제적인 방정식에 대한 조각적인 반응이라고 고집하는 나머지 땅과 하늘,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용자를 등한시 하여 왔다 ”고 말하였다.
피이터 블레이크 著, 윤일주 譯, <근대건축은 왜 실패하였는가>, 기문당, 1987, pp.102~105
* 윤일주는 시인 윤동주의 동생이다. 성균관대 건축공학과 교수를 지냈고 1985년(향년 57세)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