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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씨 같은 것을 뱉듯", 이성복

BYEORI ARCHITECTS 2023. 10. 1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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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씨 같은 것을 뱉듯

 

아파트 입구에 내놓은 교자상이 비에 젖고 있다

지금 빗물은 호마이카 상판 위에 고여 있지만

모서리 틈새나 못 빠진 자국 찾아 들어갔다가

햇빛 나면 습기 되어 빠져나갈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든 새댁이 관리실 앞을 지나며 경비

노인에게 인사한다 거의 눈짓에 가까운 인사, 약간

입술을 오므리고 포도 씨 같은 것을 뱉듯 그렇게

하는 인사, 물 위를 스치는 잠자리 날개 같은 인사

나의 웃음도 그렇게 올라타고 싶구나 물 위를 스치는

잠자리 날개에 제 날개를 포개는 잠자리 수컷처럼

이제는 동네 슈퍼로 들어가버린 여인, 생각해보라,

술은 술 노래를 모르고 나는 당신을 모른다는 것 

 

 

 

이성복(2003),「아, 입이 없는 것들」, p120,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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