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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씨 같은 것을 뱉듯
아파트 입구에 내놓은 교자상이 비에 젖고 있다
지금 빗물은 호마이카 상판 위에 고여 있지만
모서리 틈새나 못 빠진 자국 찾아 들어갔다가
햇빛 나면 습기 되어 빠져나갈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든 새댁이 관리실 앞을 지나며 경비
노인에게 인사한다 거의 눈짓에 가까운 인사, 약간
입술을 오므리고 포도 씨 같은 것을 뱉듯 그렇게
하는 인사, 물 위를 스치는 잠자리 날개 같은 인사
나의 웃음도 그렇게 올라타고 싶구나 물 위를 스치는
잠자리 날개에 제 날개를 포개는 잠자리 수컷처럼
이제는 동네 슈퍼로 들어가버린 여인, 생각해보라,
술은 술 노래를 모르고 나는 당신을 모른다는 것
이성복(2003),「아, 입이 없는 것들」, p120,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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