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201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_김영민

정신의 성숙과 생각의 복잡 통상 공부를 결심한 이가 제일 먼저 손대는 게 책읽기다. 그러나 바로 이게 병통이다. 그래서, 레비 스트로스의 지적처럼 '정신의 성숙과 생각의 복잡을 혼동하는 일'이 생겨난다. 어떤 공부에서든 (좋은) 책읽기를 생략할 수 없지만, 책읽기는 언제나 반편의 진실을 보여줄 뿐이다. 내가 '공부하라'고 하면, 우선 그것은, 규칙적으로 달리기나 윗몸일으키기를 한다거나, 걸어 다니면서 일체 타인의 얼굴을 구경하지 않는다거나, 약속에 견결하라거나, 사린(四隣)과 새 관계를 꾸며보라는 등등의 얘기다. 혹은 타인과 더불어 있는 곳에서는 핸드폰을 드러내지 않는다거나, 작고 허무한 일들에 극도의 정성을 들인다거나, 질투와 시기를 자근자근 밟아 죽인다거나, 자신의 말하기나 앉기 ..

BOOKS 2026.09.11

활과 리라_옥타비오 파스

" 글을 쓴다는 것은, 아마도 언젠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던져서, 그에 대해 답할 수 있을 때까지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는 질문에 대답하려고 애쓰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이외에 더 적절한 정의는 없을 것이다. " 옥타비오 파스. (2007). 활과 리라. 솔출판사. 5 * 첫 페이지, 첫 문장에 손 끝이 저릿하고, 쉰 새벽 번개의 출현만큼 장엄한 글을 발견하여, 그 느낌을 놓치고 싶지 않아 이렇게 둔탁하게 기록한다. 일단은 기록 자체가 중요하니까......중요하게 다루는 지점은, 시작 글에서 "글을 쓴다는 것~"을 "건축을 한다는 것~"으로 바꿔도 문장 전체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라는 것. 오히려, 건축설계를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건축이란" 어쩌고 저쩌고 중언부언 하는 것 보다, 훨씬 ..

BOOKS 2026.09.02

자작나무_Robert Frost

....나도 한때는 그렇게 자작나무를 휘어잡는 소년이었다그래서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한다걱정이 많아지고인생이 정말 길 없는 숲 같아서얼굴이 거미줄에 걸려 얼얼하고 근지러울 때그리고 작은 가지에 눈을 때려한쪽 눈에서 눈물이 날 때면더욱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진다이 세상을 잠시 떠났다가다시 와서 새 출발을 하고 싶어진다.... Robert Frost. (2007). 불과 얼음. 민음사. 58 일부인용

BOOKS 2026.08.27

분서1_잡설_이지

세상의 정말 글 잘하는 사람은 모두가 처음부터 문학에 뜻을 둔 것은 아니었다. 그 가슴속에 차마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괴이한 일들이 무수히 고여 있고, 그의 목구멍에는 말하고 싶지만 감히 토해낼 수 없는 말들이 걸려 있으며, 그 입가에는 또 꺼내놓고 싶지만 무슨 말로 형용해야 좋을지 알 수 없는 것이 허다한데, 그런 말들이 오랜 세월 축적되면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형세가 된다. 그랬을 때 일단 그럴싸한 풍경을 보면 감정이 솟구치고, 눈길 닿는 사물마다에 탄식이 흘러나온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의 술잔을 빼앗아 자신의 쌓인 우수에 들이붓게 되고, 마음속의 울분을 하소연하거나 천고의 기박한 운명에 대해 한탄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쏟아져 나온 옥구슬 같은 어휘들은 은하수에 빛나며 회전하는 별들처럼 하..

BOOKS 2026.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