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포도 씨 같은 것을 뱉듯 아파트 입구에 내놓은 교자상이 비에 젖고 있다 지금 빗물은 호마이카 상판 위에 고여 있지만 모서리 틈새나 못 빠진 자국 찾아 들어갔다가 햇빛 나면 습기 되어 빠져나갈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든 새댁이 관리실 앞을 지나며 경비 노인에게 인사한다 거의 눈짓에 가까운 인사, 약간 입술을 오므리고 포도 씨 같은 것을 뱉듯 그렇게 하는 인사, 물 위를 스치는 잠자리 날개 같은 인사 나의 웃음도 그렇게 올라타고 싶구나 물 위를 스치는 잠자리 날개에 제 날개를 포개는 잠자리 수컷처럼 이제는 동네 슈퍼로 들어가버린 여인, 생각해보라, 술은 술 노래를 모르고 나는 당신을 모른다는 것 이성복(2003),「아, 입이 없는 것들」, p120, 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