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나의 문화유산답사기3_유홍준

" 뭘 말하려고 망설이지 ? " " 선생님, 아까부터 묻고 싶었는데요, 돌마리 옛 무덤에 가서도 그렇고 몽촌토성에 와서도 그렇고 백제는 여전히 보이지 않아요. 선생님은 백제의 아름다움 혹은 백제의 미학을 한마디로 뭐라고 말할 수 있으세요 ? " " 안 보이기는 나도 매한가지야. 어쩌면 백제는 회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부드럽다. 온화하다. 친숙하다. 우아하다는 말로 백제를 설명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표현으로야 백제를 말했다고 할 수 있겠나. 나는 김부식이 백제의 미학을 가장 정확하고 멋있게 핵심을 잡아 표현했다고 생각하고 있어. 백제본기 시조 온조왕 15년, 그러니까 기원전 4년 항목에 이런 말이 나와요. 춘정월(春正月)에 궁실을 새로 지었는데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

BOOKS 2025.04.09

잃어버린 자미탄의 여름_유홍준

" 나는 배롱나무꽃이 한여름 땡볕에 피어난다는 사실에 더욱 큰 매력을 느낀다. 춘삼월이 되면 대부분의 나무는 잎이 채 나기도 전에 앞을 다투어 꽃부터 피우며 갖은 맵시를 자랑하다가 5월이면 벌써 연둣빛 신록에 묻혀버리고 마는데, 배롱나무는 그 빛깔 있는 계절에는 미동도 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을 준비하고서는 세상이 꽃에 대한 감각을 잃어갈 즈음에 장장 석달하고도 열흘을 피어 보이니 인간세상에서 대기만성하는 분들의 모습이 그런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배롱나무를 볼 적이면 곱디곱게 늙은 비구니 스님의 잔잔한 미소 같은 청아(淸雅)한 기품을 느끼곤 한다. "  유홍준, , 창작과비평사, 1993,  pp.292*자미탄(紫薇灘) : '자미'는 목백일홍나무의 별칭이고, '탄'은 여울이라는 뜻

BOOKS 2024.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