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배롱나무꽃이 한여름 땡볕에 피어난다는 사실에 더욱 큰 매력을 느낀다. 춘삼월이 되면 대부분의 나무는 잎이 채 나기도 전에 앞을 다투어 꽃부터 피우며 갖은 맵시를 자랑하다가 5월이면 벌써 연둣빛 신록에 묻혀버리고 마는데, 배롱나무는 그 빛깔 있는 계절에는 미동도 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을 준비하고서는 세상이 꽃에 대한 감각을 잃어갈 즈음에 장장 석달하고도 열흘을 피어 보이니 인간세상에서 대기만성하는 분들의 모습이 그런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배롱나무를 볼 적이면 곱디곱게 늙은 비구니 스님의 잔잔한 미소 같은 청아(淸雅)한 기품을 느끼곤 한다. " 유홍준, , 창작과비평사, 1993, pp.292*자미탄(紫薇灘) : '자미'는 목백일홍나무의 별칭이고, '탄'은 여울이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