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104

나의 행복론-이호철

“인간은 의욕적으로 감행하여, 마침내 창조함으로써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 “인간은 모름지기 행동하여 각고 끝에 목표한 것을 획득할 때, 진정한 만족과 행복을 느낀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쾌락보다는 행동을 수반한 고통을 택하는 게 차라리 인간답다.” “결국 인간의 행복은 제각기 처한 상황에서 한껏 양껏 행동하는 것, 주어진 자신의 생명력과 에너지를 송두리째 연소시키며 보람 있는 일을 해내는 것, 바로 그 창조행위 속에서 찾아져야 한다.” “요컨대 인간의 행복이란 끊임없는 행동, 끊임없는 움직임, 약동하는 생명의 연소 그 자체이다. 그것은 남이 보기에는 고통이지만 살아 있음의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사람은 누구나가 제각기 생긴 만큼, 처한 상황만큼, 행동의 장이 정해지게 마련이다. 그 장의 성질에 따라..

BOOKS 2024.01.18

옛집과 아파트_김훈

일상생활 속에서 공간의 의미를 성찰하는 논의는 늘 무성하다. 개항 이래 이 나라에 건설된 주택과 빌딩과 마을과 도시들은 모두 자연과 인간을 배반했고, 전통적 가치의 고귀함을 굴착기로 퍼다 버렸으며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의 편이 아닌 공간에 강제수용되어 있다는 탄식이 그 무성한 논의의 요점인 듯하다. 비바람 피할 아파트 한 켠을 겨우 마련하고나서, 한평생의 월급을 쪼개어 은행 빚과 이자를 갚아야 하는 사람이 그런 말을 들으면 마음속에 찬바람이 분다. 마소처럼, 톱니처럼 일해서 겨우 살아가는 앙상한 생애가 이토록 밋밋하고 볼품없는 공간 속에서 흘러간다. 그리고 기기에 갇힌 사람의 마음도 결국 빛깔과 습기를 잃어버려서 얇고 납작해지는 것이리라. 김훈, , 생각의 나무, 2010, pp.142

BOOKS 2024.01.06

인간-마광수

인간은 반항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인류 사회가 앞으로 보다 평화스런 행복과 복지를 추구해 나가기 위해서는, 폭력적 투쟁보다 ‘문화적 투쟁’이 치열하게 계속돼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특히 예술을 예로 들어 생각해 볼 때, 예술은 더욱더 ‘금지된 것에 대한 도전’이 되어야 하고 ‘상상력의 투쟁’이 되어야 한다. 예술은 당대(當代)의 가치관에 순응하는 계몽수단이 돼서는 절대로 안 된다. 예술은 언제나 기성도덕에 대한 도전이어야 하고, 기존의 가치체계에 대한 ‘창조적 불복종’이나 ‘창조적 반항’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술인, 나아가 모든 문화인들은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가슴 깊이 새겨둘 필요가 있다. 진정한 반항인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 참된 문화적 생산물은 당세풍(當世風..

BOOKS 2023.12.19

개여울_김소월

당신은 무슨일로 그리합니ㅺㅏ? 홀로히 개여울에 주저안자서 파릇한풀포기가 도다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해적일ㅼㅐ에 가도 아주가지는 안노라시든 그러한 約束이 잇섯겟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안자서 하염업시 무엇을생각합니다 가도 아주가지는 안노라심은 구지닛지말라는 부탁인지요 초판본 진달래꽃 -김소월 시집(1925년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 「개여울」, p178~179, 도서출판 소와다리

BOOKS 2023.12.09

"포도 씨 같은 것을 뱉듯", 이성복

104 포도 씨 같은 것을 뱉듯 아파트 입구에 내놓은 교자상이 비에 젖고 있다 지금 빗물은 호마이카 상판 위에 고여 있지만 모서리 틈새나 못 빠진 자국 찾아 들어갔다가 햇빛 나면 습기 되어 빠져나갈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든 새댁이 관리실 앞을 지나며 경비 노인에게 인사한다 거의 눈짓에 가까운 인사, 약간 입술을 오므리고 포도 씨 같은 것을 뱉듯 그렇게 하는 인사, 물 위를 스치는 잠자리 날개 같은 인사 나의 웃음도 그렇게 올라타고 싶구나 물 위를 스치는 잠자리 날개에 제 날개를 포개는 잠자리 수컷처럼 이제는 동네 슈퍼로 들어가버린 여인, 생각해보라, 술은 술 노래를 모르고 나는 당신을 모른다는 것 이성복(2003),「아, 입이 없는 것들」, p120, 문학과지성사

BOOKS 2023.10.13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_김광규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차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

BOOKS 2023.10.08

긍정적인 밥_함민복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함민복,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 2011, p.94

BOOKS 2023.09.26